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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생명과 윤리 생각케한 영화
8.15 광복절 개봉 영화 '오펜하이머'
기자뉴스 김철관 기자   |   2023-08-16

▲ 영화 '오펜하이머' 포스터  © 유니버설 픽처스


인간 생명과 윤리의 기준은 뭘까. 지난 15일 첫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를 보고 떠오르는 생각이다.

제78주년 8.15광복절에 개봉한 영화 '오펜하이머(리얼타임 180분)'는 '원자폭탄의 아버지'라고 일컫는 물리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 4. 22~1967. 2. 18)의 일대기를 그린 작품이다. 지난 7월 25일 미국 등 전세계에서 개봉해 글로벌 박스 오피스 집계 결과 상당한 수익으로 흥행에 대성공했다고 알려졌다. 하지만 전세계 유일하게 일본에서는 개봉 여부를 두고 논란이 일기도 했다.

 

1945년 8월 일본 히로시마(6일)와 나가사키(9일)에 원자폭탄 투하로 거의 20만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 극우 민족주의 시민단체에서는 지난 6일 자국 미국대사관 앞에서 미국의 사과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물론 일본 전체를 대변한 집단은 아니지만, 한편으로는 수많은 일본인의 생명을 아사갔다는 의미에서 이해가 된 부분이었다.

 

이 영화는 킬리언 머피(오펜하이머 역),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루이스 스토로스 역), 맷 데이먼(레슬리 리처드 그로브스 역), 에밀리 블런트(키티 오펜하이머 역), 플로랜스 퓨(진 태드록 역) 등 스타급 배우들이 배역을 맡았다. 장르상 스릴러이지만 실화를 배경으로 해, 다큐멘터리로 착각할 정도로 원폭 제작과정은 물론 가족, 연인, 사상, 이념 등 그의 개인사(사생활)를 다방면으로 묘사했다.

 

특히 많은 부분을 흑백으로 할애해 과거와 현재를 병렬적으로 연결한 편집도 눈길을 끌었다. 특히 그를 다양한 각도로 접근해 그에 대한 평가(부정적이든 긍정적이든)를 관객들의 몫으로 돌린 듯했다. 또한 선과 악 등 이분법적 사고로 접근하지 말라는 의미도 내포된 듯 보였다.

 

영화 제작자이면서 감독을 맡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다크나이트', '인셉션', '인터스텔라' 등 영화를 국내에 선보여 우리에게 익숙한 감독이다. 그는 영화 홍보를 위해 우리나라를 자주 찾은 인물이기도 하다.

15일 오후 5시 30분 가족과 함께 경기도 다산 cgv극장에서 '오펜하이머'를 관람했다. 3시간 정도의 리얼 타임을 갖고 있어, 처음에는 지루함이 있긴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실화답게 생동감 있어 스크린에 완전 몰입할 수 있었다. 영화 '오펜하이머'는 그가 청문회에 참석해 청문위원으로부터 취조를 받는 모습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런데 왠지 모르게 시간이 갈수록 영화 '진주만'이 자꾸 떠 올랐다. 미국이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많은 사상자와 피해가 났고, 여기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 열도에 원폭 투하의 한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영화를 보면서 머리 속 가장자리에 맴돈 것은 원폭의 파괴력에 현재 진행형인 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핵 오염수 방출에 대한 두려운 생각과 일제 강점기 태평양전쟁 때 강제 징집돼 끌려가 남양군도에서 사망한 큰아버지도 떠올랐다. 

 

또한 우리나라가 일제강점기에 식민지 수탈로 힘든 시기를 겪었고,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목숨을 잃은 부분과 원폭 투하 당시 히로시마로 이주해 살았던 많은 조선인 그리고 원폭이 투하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건설 복원 과정에서 상당수 조선인들이 참여해 피폭됐다는 역설적인 얘기들이 가슴을 아프게했다.

 

지난 7월 25일 전세계 동시 개봉한 영화가 한참 늦은 8월 15일 국내 개봉한 이유는 아마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으로 인해 광복을 맞았기에, 우리 국민들에게 광복절 영화로 적합했다는 판단 때문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나치의 유대인 탄압에 위협을 느낀 과학자 중 역사적으로 잘 알려진 유대계 물리학자(상대성 이론) 알버트 아이슈타인도 1933년 미국으로 도피했다. 나치의 유럽 장악으로 전쟁의 위험성을 잘 안 아인슈타인은 1939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나치가 먼저 핵무기를 개발할 수도 있다, 미국은 핵무기 개발을 시작해야 한다' 등의 내용을 담은 편지 한장을 보낸다.

 

물론 유명세를 탄 알버트 아인슈타인의 명의로 편지를 보냈지만 당시 저명한 과학자들이 모여 상의해 보낸 편지라고 알려져 있다.

 

이로 인해 상황과 심각성을 간파한 당시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은 핵무기 개발을 비밀리에 시작한다. 부통령인 트루먼도 몰랐을 정도였다. 45년 초 루스벨트 대통령이 뇌출혈로 사망하고 부통령인 트루먼이 대통령이 돼 이를 알게 됐고, 트루먼도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의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인 '맨하튼 계획'을 적극 지원한다. 당시 '맨하튼 계획'의 총책임자가 오펜하이머였다. 당시 중령이란 계급으로 참여했다. 미국은 포츠담 회담(7월 26일) 10일 전인 45년 7월 16일 오전 5시 29분 원폭실험에 나섰고 인류 최초의 핵무기 개발에 성공한다.

 

아인슈타인이 민주당 출신 플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재위 기간 1933~1945, 4선)에게 편지를 보낸 후, 6년 만인 1945년 인류 역사상 최초의 핵무기가 미국에 의해 개발된다. 그리고 전쟁 종식을 위해 8월 6일과 9일, 각각 히로시마(리틀 보이)와 나가사키(팻맨)에 투하된다. 사실 미국의 원자폭탄 개발은 2차세계대전(1939~1945)을 일으킨 독일 나치(히틀러)를 겨냥해 만들었지만, 그해 4월 30일 히틀러의 자살과 5월 8일 나치가 항복 문서에 서명함으로써 2차세계대전은 끝이 났다. 그래서인지 이후 동남아 패권을 놓고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이 타킷이 됐다. 당시만해도 오펜하이머는 '원자폭탄만이 전쟁을 끝내고, 지옥이 가고 평화가 찾아올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1945년 초 패전을 앞둔 일본은 진주만 공격, 가미가제(신풍, 자살특공대) 특공대 공격, 오키나와 전투 등 결사 옥쇄 항전으로 미국의 많은 인명 피해가 속출한 시기이기도 했다. 독일 포츠담회담에서 모인 연합군 미영소(트루먼, 처칠, 스탈린) 3국 정상은 일본에게 8월 1일까지 일왕제도 유지, 미점령 등 조건을 내세워 무조건 항복을 권유했지만 일본 총리 스즈키 칸타로는 mokusatsu(무쿠사추, 묵살)란 말로 거부의 뜻을 나타내, 결국 히로시마(8월 6일)와 나가사키(8월 9일)에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많은 인명 피해를 남긴 후, 일본은 항복문서에 서명을 한다. 히로시마에는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상당수 조선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원폭 피해는 일본 다음으로 조선인의 피해가 컸다.

 

 '오펜하이머'도 아인슈타인같은 독일계 유대인이다. 차이점이라면 오펜하이머는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고, 아인슈타인은 독일에서 태어나 도미했다는 점이다. 당시 아인슈타인은 자신의 민족을 탄압한 독일 나치가 아니고 일본에 핵무기를 투여했다는 사실을 아쉬워하면서 '사실 나치는 핵무기를 만든 여력이 없었다'고 뒤늦게 원폭 투하에 대해 후회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오펜하이머가 아인슈타인과 만나 대화하는 모습이 몇 컷 나온다. 오펜하이머도 힌두교 경전을 인용해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됐다'는 말로 수많은 인명을 아사간 원폭 투하를 후회했다.

 

핵무기 투하 명령을 내린 트루먼 대통령과의 만남에서 오펜하이머는 '핵무기 투하가 불필요했고, 정직하지 않았다'고 후회했고, 또한  '대통령 각하, 나는 내손에 피가 묻어 있다'고 말했다. 이에 트루먼 대통령은 '피묻는 손이라니, 내 손의 피의 반도 못 묻친 놈이다. 다시는 내 사무실에 오지 못하게 해라'는 일화도, 영화 속에서도 짤막하게 나오지만, 역사는 실제로 이를 증명하고 있다.

 

오펜하이머는 당시 유명 잡지인 '라이프지', '타임지'를 비롯해 여러 잡지 표지로 장식할 만큼 엄청난 명성을 얻었지만, 이후 죄책감에 시달렸다. 당시 그는 원폭 대량학살을 후회하며 "우리가 만든 물건은 어떤 식으로든 사악한 것이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미 핵무기 개발 4년 후, 소련의 핵무기 개발로 냉정시대 패권을 두고 트루먼 대통령은 원자폭탄보다 몇 배가 강한 수소폭탄 개발에 착수하지만, 오펜하이머는 회의적이었다. 수소폭탄 제작과 관련해 아인슈타인은 오펜하이머에게 "로버트 당신은 원자폭탄 그자체이다, 아쉬운 것은 저쪽이다, 왜 사지로 뛰어 들려고 해요. 그냥 관둬요"라고 말한다.

 

핵무기 투하 후회 등 관련 발언으로 트루먼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갈등이 생겼고 미국에 이어 4년 후, 소련이 핵무기 개발을 발표하자,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 그는 부인 몰래 만난 여인이 공산당원이어서, 소련 스파이 혐의로 1954년 4주간에 걸친 비공개 공산당 청문회에 선다. 미국 정부는 그의 일투족을 다 도청해 개인 사생활까지 다 털었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나오지는 않았다. 그는 결코 공산당 소련 스파이가 아니라고 항변했지만, 청문위원 표결로 당시 직책은 박탈됐고 67년 사망한다. 지난해(2022년 후반) 오펜하이머 사망 50여년 만에 미국 바이든 정부에 의해 복권됐다.

 

인류의 평화를 위해 과학자의 손으로 만들어진 핵무기가 이젠 권력자의 손으로 넘어가, 인류 평화를 위협하는 존재로 둔갑했다. 바로 이 영화에서 오펜하이머가 고민한 부분이기도 하다. 원자폭탄을 잘못 다루면 인류의 재앙이 온다는 그의 걱정도 영화 속에 담았다. 일본에게 항복을 받아 인류에게는 잠재적 창조행위를 한 것 것 같았지만, 시간이 지나 원자폭탄 투하가 인간에 대한 파괴행위라는 것을 느낀 오펜하이머의 고민이 이 영화의 키워드가 아닐까. 영화를 통해 인간 생명과 윤리의 중요성이 다시금 느껴졌다. 

 

참고로 이 영화는 카이버드 마틴 셔윈이 쓴<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AMERICAN PROMETHEUS>를 원작으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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