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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실치즈와 장애인의 성공신화, 지정환 신부 누굴까

[서평] 박선영 명인문화사 대표의 <지정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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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뉴스 2014-12-28

▲ 표지     © 사무처


임실치즈 성공의 산증인, 장애인 삶의 용기 제공, 박정희․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의 항거 등 55년째 한국의 생활을 기록한 한 외국 출신 노신부의 삶의 철학을 기록한 책이 나왔다. 

53년 한국 전쟁이 끝나고 59년 12월 피폐해진 한국 땅을 밟은 벨기에 출신 천주교 신부가 있었다. 디디에 세르테벤스(Didier t’Serstevens) 신부다. 임실치즈 성공의 산증인으로 한국이름 지정환(84) 신부로 잘 알려져 있다. 

박선영 명인문화사 대표가 쓴 <지정환 신부-임실치즈와 무지개 가족의 신화>(2014년 11월 28일, 명인문화사)는 50년대 가난하고 척박한 땅에 와 따뜻하고 풍요로운 사랑과 평화를 전해준 지정환 신부의 일대기를 진솔하게 기록했다. 

59년 12월 사제의 신분으로 한국에 온 벨기에 출신 지정환 신부는 첫 부임지인 전북 부안에서 농민들과 함께 30만의 땅을 개간했고, 임실의 척박한 자연환경을 활용해 산양을 키우고, 이를 통해 한국에서 최초로 치즈를 생산하며 지역주민들의 삶의 개선에 노력한 성직자이다.

당시 척박한 한국 생활에서 여러 번의 병을 앓아 한국과 고국인 벨기에 가 치료를 받았고, 특히 다발성신경경화증으로 오른쪽 다리가 마비되는 장애인으로서 삶을 시작한다. 이후 장애인 공동체인 ‘무지개 가족’의 지도신부가 돼 장애인들에게 스스로 삶을 개척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등에 혼신을 쏟았다. 

이런 공로를 인정해 한일 월드컵이 열린 2002년 호암상 사회봉사상 수상자가 돼 상금 1억을 받게 됐다. 이와 더불어 임실치즈협동조합 등과 관련한 이익금을 합쳐 ‘무지개 장학재단’을 설립해,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한 환경에 처해 있는 장애인이나 어려운 이웃을 대상으로 장학금을 수여하고 있다. 

현재 84세의 고령인 지 신부가 20대에 사제서품을 받고 왜 굳이 한국을 선택했을까. 바로 50년대 한국이 아프리카보다 못살았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다. 

“내개 만약 지금 다시 사제서품을 받던 20대로 돌아간다면, 이번에는 한국이 아니라 아프리카로 가고 싶습니다. 내가 한국을 처음 선택했을 때는 아프리카보다 한국이 더 가난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한국을 선택했지요. 그러나 지금 한국은 발전했고, 아프리카는 그때보다 훨씬 가난해졌습니다. 한국이 이처럼 발전하게 된 원동력이 교육이었듯 이번에는 아프리카로 가서 그들의 배움의 기회를 주고 싶습니다.” -본문 중에서- 

지 신부는 지난 70년대 장기집권을 할 목적으로 유신헌법을 발표한 박정희 정권에 항거하며, 3공악(惡)을 없애야 한다고 소리쳤다. 당시 그는 3공악인 공화당, 공산당, 공해를 없애야 한다며 반정부 시위에 돌입하기도 했다. 

시위 중 경찰에 연행됐고, 가담한 시위자 중 외국인 신부를 확인한 박정희 대통령은 “임살에서 치즈를 만들고, 신용협동조합을 만들어 농민들과 함께하고 있는 신부”라는 보고를 듣고 구속과 추방을 하지 말고 임실로 다시 돌려보내라는 일화가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끈 대목이다. 70년대 절대 권력을 갖고 사회․정치적으로 탄압을 했던 박정희 대통령도 현대화(근대화)라는 말에 민주화 투쟁으로 잡혀온 그를 용서 해준 것이다. 또한 지 신부는 지난 80년 5.18 때, 위험을 무릅쓰고 임실에서 우유를 실고 광주로 내려가 두려움에 떨고 있던 시민군들에게 주고 오기도 했던 인물이다. 

그럼 벨기에 디디에 세르테벤스 신부가 한국식 지정환 신부로 이름을 바꾼 이유는 뭘까. 한국 사람들이 부르기 힘들었다는 데서 연유를 찾을 수 있다. 전주교구에서 부임했는데 교인들이 아무리 이름을 가르쳐 줘도 ‘디뎌 세수’ 등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이를 알아차린 김이환 부주교가 디디에의 'D'를 한국어로 발음했을 때 가장 가까운 발음인 ‘지’를 성으로 하고 이름을 지어준 당시 김이환 부주교의 끝 이름 ‘환’을 넣어 완성한 이름이 ‘지정환’이었다는 것이다. 

지정환 신부는 임실치즈 공장의 설립과 계속된 실패에도 불구하고 강한 집념으로 도전했다. 프랑스와 벨기에 등 유럽을 가 치즈기술을 배웠고, 특히 지 신부가 싫어한 이탈리아 공산당 당대표 비서로 일한 젊은이가 우연히 건네준 치즈제조법이 적힌 노트를 받고, 한국행 비행기에서 마냥 설레고 기쁜 마음을 간직하게 됐다고. 

“아무리 유럽에서는 공산당 인식이 한국과 다르다고 하여도 공산당이라면 치를 떠는 지정환 신부였다. 그런 그가 공산당 대표 비서가 건넨 치즈제조와 관련한 비밀노트를 받았다. 아이러니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는 이념을 모두 떠나 임실주민들을 생각하면 그 사람에게 고마울 뿐이었다.” -본문 중에서- 

지 신부는 임실치즈 기술자에서 치즈를 판매하는 세일즈맨이 돼 동분서주했다. 당시 서울의 가장 유명한 호텔인 조선호텔에 납품을 성공시켰고, 가공유 대기업들과의 공존으로 지방 임실치즈의 존재감을 보여줬다. 

이후 다발성신경경화증으로 한쪽 다리가 마비된 장애인으로서 장애인 지도신부가 돼 무지개가족을 이끌었다. 

“지 신부에게 장애인들은 불쌍한 사람들이 아니라 해결해야 할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재활운동이었다. 특히 중증장애인에게는 재활은 고통스러운 일이겠지만 지 신부는 항상 ‘그래 넌 할 수 있어! 일어나 힘내!’라고 외치며 그들을 돕고 있다.” 

지 신부는 “누구든지 언제든 장애인이 될 수 있다”며 “모든 비장애인들이 잠재적 장애인들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를 인정함으로써 이미 장애인이 된 사람들에 대한 사회적 배려만큼이나 장애인의 발생을 사전에 방지하기위한 정책적 노력도 아울러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저자 박선영은 명인문화사 대표이다. 고려대 정치학 석사를 졸업했고, 이화여대 정치외교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공저인 <그녀들은 무엇이 다른가 : 세계여성지도자들> 등이 있다

기사입력 : 2014-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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