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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60년을 함께 한 형을 떠나 보내며

3일 세월호 희생자들 납골공원 봉안...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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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뉴스 김철관 기자 2018-04-04

▲ 고인의 영정     © 기자뉴스

 

친구 같이 지낸 두 살 터울인 형이 태어나 60년도 살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암 투병 후 1년 여 만에 세상을 하직했다.

 

지난 330일 영면한 형이 지난 2011421일 소천한 모친과 2014416일 발생한 세월호 참사 단원고 학생 등 100명의 희생자들이 봉안된 경기 안산 하늘공원에 함께 잠들었다.

 

암 투병 중인 셋째 형이 영원한 안식처로 갔다. 지난해 1월 식도암 판정을 받은 지 12개월 만인 지난 330(음력 214) 세상과 영원히 작별을 고했다.

 

고인(故人)이 된 형의 이름은 김철수(金哲守). 세상에서 가장 흔한 이름이다. 1960930일 생(쥐띠)이니, 정확히 59(58)이다. 바로 환갑(60)도 못 넘기고 하늘나라도 갔다. 나하고는 두 살 터울이다.

 

고인은 60년대 전남 고흥군 두원면 용당리 282번지에서 태어나 함께 자랐다. 고인을 낳은 모친(故 宋)7년 전인 지난 2011421(음력 319)에 향년 85세로 별세했다. 모친보다 세 살 아래인 부친()89세로 생존해있다. 부친이 생존 상태에서 고인이 된 셋째 형은 불효를 저지른 셈이다.

 

맏형인 김철현(金哲賢, 51년생)은 어린 시절 일본 제국주의 식민시대 강제 징집돼 남양군도에서 숨을 거둔 큰아버지 (김중원)의 양자로 갔다. 그래서 그를 빼고 부모에게 태어난 자녀는 호적상 41녀이고 고인은 내 바로 위인 3남이었다. 형제들을 순서대로 나열하면 김성현(金性賢, 55년생김철진(金哲珍, 58년생김철수(金哲守, 60년생김철관(金哲寬(62년생김선숙(金善淑, 65년생)이다. 고인이 된 형의 출생 이름은 김철귀였다. 이름이 좋지 않다고 해 초등학교 시절에 김철수로 개명했다.

 

바로 위형이지만 고인과는 친구 같이 지냈다. 그래서 서로 별명을 부르며 통했다. 병에 걸리기 전까지 만 해도 서로 만나면 이름 보다 별명을 부르며, 친근감을 표시했다.

 

고인의 어린 시절 별명은 귀젖보였다. 나는 캐불이었다. ‘귀젖보는 귀에서 고름이 자주 나온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고, 캐불이는 정확히 코불이를 전라도 발음으로 쌔게 부른 별명이었다. 콧물을 많이 흘러 붙여진 초등학교 시절 별명이었다. 성인이 돼서도 서로 그렇게 익숙하게 불렀다. 암에 걸리기 얼마 전 서로 만나, 캐불이와 귀젖보를 부르면서 얘기를 나눴다. 그런 그가 하늘나라로 갔다. 정말 둘도 없는 친구 같은 형이 세상을 하직했다. 억장이 무너질 듯 마음이 아팠다.

 

생전 고인이 휴대폰으로 연락을 하면 가끔 주말에 만나 소일거리로 식사도 하고, 모친 납골묘에 가 예의를 갖춘 후, 어린 시절 기억들을 더듬으며 여러 얘기를 나눴다. 하지만 정작 성인이 돼 둘이 찍은 사진 하나가 없었다. 휴대폰 카메라가 있어 그냥 찍으면 추억이 될 사진들이 많았을 텐데, 둘이 찍은 사진 하나도 없었다.

 

▲ 생전 고인과의 마지막 사진이다.     © 기자뉴스

 

안산 고대병원에서 암 판정을 받은 직후인 2017216일 면회를 갔다. 암에 걸리면 오래 살지 못한다는 생각이 언뜻 들어, 여러 링거 주사바늘을 꼽고 있는 형님에게 사진 촬영을 제의했다. 하지만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암으로 인한 환자복을 입고 찍은 모습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제발 한번만 찍자고 재촉했다. 아니 사정사정 졸랐다. 형은 마지못해 허락을 했다. 바로 이게 생전 마지막 사진이 될 줄 몰랐다.

 

지난 330일부터 3일간 빈소가 마련된 안산 제일장례식장에서 조문객을 맞았다. 고인과 미망인 형수 슬하에 11녀가 있다. 미혼인 김동민(金東彬, 90년생, 29)과 김지은(金智恩, 92년생, 27)이다. 이날 미망인(53)을 비롯해 고인의 두 자녀 그리고 내가 조문객들을 맞았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 조문을 했고, 상당수 화환도 보내줬다. 특히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늦은 밤 직접 조문을 왔고, 조기를 보냈다. 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 정재호 의원 등도 조기나 조화를 보내 줬다. 아는 지인이나 단체로부터 조화가 20여 개가 왔다.

 

331일 늦은 저녁 조문객들의 발길이 한산한 틈을 타 빈소에서 잠시 나와 인근 복도 의자에 앉아 내 마음을 표현해 봤다.

 

59살의 소천

 

억장이 무너진다

핏줄이라서인지

암투병 생활이 힘들다던

그가

 

파란하늘 나라로 갔다

누구나 넘긴 그 흔한 환갑도 못 넘기고

59살의 나이에 하얀 국화꽃이 됐다.

 

젊은 형수 놓아두고

아들과 딸, 성인이 돼 효도할 나이인데

술에 취한 듯 정처 없이 세상과 하직을 하네

깊은 슬픔보다 보고픔이 앞선다.

 

먼저 간 하늘나라 모친과 오순도순 얘기하며

아름다운 천당에서 기쁜 하루하루 보내오.

 

▲ 고인의 납골     © 기자뉴스

 

고인은 식도암 판정이후, 입으로 음식을 삼키지 못했다. 주사로 영양분을 공급했지만 몸은 자꾸만 말라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움직이지 않고 누워있어 욕창도 생겼다. 식도암을 이기려는 의지로 독한 항암주사를 맞았다. 머리카락이 빠지면서 각질이 생기고 손톱이 갈라지는 고통 속에 하루하루를 보냈다. 이곳저곳 대학 병원을 옮겨 다니며 최선을 다했지만, 가망이 없다는 의사의 진단으로 결국 요양원으로 옮기자, 얼마 가지 않아 숨을 거뒀다.

 

41일 오전 만우절이었다. 거짓말 같은 느낌을 받으며 발인을 했다. 경기도 용인에 있는 한 화장장에서 1시간 30분가량 화장을 한 후, 오후 4시경 안산 하늘공원 납골당에 봉안했다. 이곳에서 장례식을 마친 후, 세월호 참사로 봉안된 희생자들의 납골당 들려 묵념을 했고, 어김없이 모친이 잠들어 있는 납골로 가 예의를 갖췄다. 특히 안산 하늘공원에는 4.16 세월호 참사 때 숨진 단원고 학생 등 100여 명의 희생자들의 유해가 봉안돼 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납골당 위로 고인이 된 형의 분골이 안치돼 있고, 아래쪽에 모친의 분골이 안치돼 있다. 가끔 2011년 소천한 모친 납골당이 있는 안산 하늘공원에 들릴 때마다 모친에게 묵념을 한 후, 반드시 고 단원고 학생들이 있는 납골을 찾아 조용히 묵념을 하고 가곤했다.

 

▲ 단원고 학생 등 세월호 희생자들이 봉안된 납골이다.     © 기자뉴스

 

고인은 미망인 형수(53)와 결혼해 안산에서 영업용 택시운전을 하며, 11녀를 키웠다. 하지만 일을 마치면 술을 과하게 마셨고, 줄담배를 피웠다. 술이 얼큰히 올라오면 전화를 해 이런 일 저런 일을 얘기했고, 어쩔 때는 낮술로 대취해 전화를 하기도 했다.

 

그런 그에게 건강에 나쁜 술과 담배를 자제해 달라고, 여러 차례 화를 내면서 부탁을 했지만 우이독경이었다. 고인은 호탕한 성격에 술에 취하면 편하게 대한 동생에게 자주 전화를 걸어 좋은 일, 나쁜 일 등 세상만사를 마음껏 얘기한 후 끊었다.

 

고인의 삼우제가 43일 오후 2시 경기도 안산시 부곡동 하늘공원 납골묘에서 열렸다. 형수와 두 자녀 그리고 형제들이 참여한 가운데 조촐하게 마지막 상례의식을 위해 제사상을 차렸다. 탈상을 하기 위한 마지막 삼우제에 고인이 평소 즐겨 먹던 음식과 술과 담배를 준비했다. 향도 피웠다. 향불의 연기가 마치 형의 혼백같이 느껴졌다. 훨훨 하늘나라로 연기가 올라갔고 마치 고인이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한 듯했다.

 

어린 시절부터 전라도 시골 마을에서 함께 자란 형제라는 점과 핏줄이라는 점 때문인지 도무지 고인이 됐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웃고 나타날 것 같았다. 3일 오후 삼우제 탈상을 한 후, 서울로 향하는 승용차 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 때서야 고인이 됐다는 사실을 정확히 인지했다.

 

() 김철수(金哲守) ()의 명복(冥福)을 빕니다.”

 

기사입력 : 2018-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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