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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희생자, 동년동월 출생한 고 김종철 시민군을 기리며

5.18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 희생자를 추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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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뉴스 김철관 기자 2019-05-18

오늘 518, 5.18광주민주화운동 제39주년이다.

 

5.18당시 전남 광주 주변 도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당사자로서 당시를 기억하며 글을 써 보고자 한다.

 

▲ KBS 캡쳐     ©기자뉴스

18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의 5.18광주민주화운동 제39주년 기념식 기념사 중 가장 가슴에 와 닿은 대목이 있었다.

 

공권력이 광주에서 자행한 야만적인 폭력과 학살에 대하여 대통령으로서 국민을 대표해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립니다. 아직도 5.18을 부정하고 모욕하는 망언들이, 거리낌 없이 큰 목소리로 외쳐지고 있는 현실이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바로 현재 진행형인 일부 자유한국당 의원과 극우세력들의 5.18망언에 대한 언급으로 보였다.

 

저는 올해 기념식에 꼭 참석하고 싶었습니다. 광주 시민들께 너무나 미안하고..(잠시 숙연해짐) 너무나 부끄러웠고, 국민들께 호소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광주 시민들께 너무나 미안하고를 끝내고 잠시 목에 매어 말을 잇지 못한 문 대통령의 모습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1962328일 태어났다. 70년대 전남 고흥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78년부터 80년까지 전남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광주에서 버스로 1시간 40여분 떨어진 곳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셈이다. 때문에 5.18 당시 구체적인 정보는 아니었지만 가게나 이웃집, 친구들한테서 일반적인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직접적인 절규현장인 광주가 아닌 주변 도시 순천에서 학교를 다녀서이다.

 

당시 모든 국내 신문과 방송은 시민군을 폭도로 매도했고, 전두환을 우상화시키는데 몰두했던 걸로 기억된다.

 

18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 기념사가 끝나고 5.18 당시를 기억하며 집 서랍장에 모아놨던 사진첩을 뒤졌다. 5.18 당시 고등학교 시절의 사진을 찾고 싶어서이다. 그런데 초·중학교와 군대 사진은 더러 있었지만 5.18이 일어났던 고등학교 시절 사진이 눈에 뜨지 않았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 때의 사진이 각각 한 장씩 남아 있었다. 빛바랜 컬러사진이었지만 그래도 볼만했다.

 

▲ 80년 5월 10일 교련복을 입고 스승과 함께 촬영한 사진이다.     © 기자뉴스

 

고등학교 3학년 때에 5.18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났는데, 당시 찍은 사진(80510)은 교련복을 입고 이름을 기억할 수 없는 스승과 촬영한 한 장의 사진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사진은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던 1년 전쯤인, 7968일 설악산 수학여행 사진이었다. 사진 뒷면에 강원도 속초시 설악산 설악동 대원산장이라고 쓴 글이 있는 것으로 봐서 그곳에서 숙식을 한 것으로 보인다. 18세 미성년자의 어린 모습으로 여관방에서 접어놓은 이불을 방석삼아 누워, 모자를 벗어 오른손에 잡고 흐트러진 교복 사진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 5.18민주화운동 1년 전인 79년 6월 8일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설악동 여관에서 찍은 수학여행사진이다.     © 기자뉴스

 

당시 고향인 전남 고흥은 고등학교가 두 군데가 있었는데, 고흥농업고등학교와 고흥여자상업고등학교였다. 당시 고등학교를 진학하지 못하고 생존권을 위해 부산이나 서울 등 생활 전선에 나가 돈을 버는 친구들도 있었고, 고흥에서 학교를 다닌 사람도 있었다. 이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광주와 순천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 나는 순천을 택했고 그곳에서 자취를 하며 학교생활을 했다. 당시 등하교 길은 사복을 입지 못했기 때문에 교복과 교련복을 입고 학교를 다녔던 기억이 난다.

 

전남 고흥에서 순천으로 유학을 온 셈이어서 주말이면 버스로 4시간 거리에 있는 고향으로 향했다. 농사와 집안일을 도와야 했고, 일주일 만에 시골 친구들을 만나 노는 것도 제법 좋았다.

 

805월 당시 어느 날 자취방에 가 오뎅국을 먹고 싶어 오뎅을 사려 상점에 들렀는데, 상점 주인이 아내와 심각한 얘기를 하는 것을 목격했다. 화순파출소 무기고가 광주시민들에게 털렸다고 안절부절 한 모습이었다. 상점주인 고향이 광주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전남 화순이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화순은 탄광촌으로도 유명한 곳이기도 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주말이면 어김없이 고향인 고흥군 두원면 구룡 부락으로 가 집안일을 도왔다. 그런데 5.18당시 광주에 고등학교를 다닌 한 동네에 산 동갑내기 여자 친구 어머니가 나를 보면서 주말인데도 딸이 오지를 않자한숨을 쉬면서 걱정한 모습이 생생한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오마이뉴스> 18일자 <18세 시민군의 묘비명...엄마는 손으로 무덤 파며 통곡했다>의 기사는 나와 같은 연도 같은 달에 태어난 고인이기에 그 글을 읽고 너무나 가슴이 아팠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동갑내기로 나는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그는 18세 미성년 노동자로. 시민군에 합류해 싸웠다. 고 김종철 시민군이다. 나는 62328일 태어났지만 고인은 20여일 빠른 36일 출생해 80527일 공권력에 의해 사망했다.

 

묘지번호 2-32, 고 김종철 시민군의 묘지 비문에 다음과 같이 새겨져 있다.

 

전두환이가 우리 대학생을 다 죽인다고 집을 나와 시민군에 가입해서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고 518일 나가서 527일까지 열심히 용감히 싸웠음.”

 

고인과 동년 동월 출생한 당사자로서 무척 가슴이 아프게 다가온 이유는 뭘까.

 

빛바랜 고등학교시절 두 장의 사진을 보면서, 만약 순천을 택하지 않고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다면 나는 어떻게 됐을까하는 생각을 하니 끔찍한 생각이 떠올랐다. 훗날 광주에 비극이 밝혀지면서, 참담했던 모습이 알려지면서, 내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졌다. 왜냐면 버스로 2시간 거리에서 동갑내기 시민군이 쓰러져 가고 있을 때, 당시 고교생으로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80년 당시 빛바랜 고등학교 시절 사진을 보면서, 이 시기에 광주에서는 엄청난 비극이 도살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왜 내가 당시 한가하게 사진만을 찍었을까하는 생각을 하니 자책감이 들었다. 당시 언론이 정확한 사실을 알렸다면 국민여론은 많은 광주시민들을 죽음으로 몰지는 안았을 것이다. 아마도 공권력으로 인한 살육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현재 극우세력과 일부 자유한국당 일원에서는 살육의 현장인 5.18민주화운동과 세월호 참사 등에 대한 일만의 책임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미 규명됐고 사실적이고 진실한 역사에 대한 반성과 성찰은커녕, 모욕적 망언만 일삼아야 하는지 알 수 없는 발언들이 지속되고 있다. 역사에 대한 진정한 성찰과 반성으로서의 역사인식이 필요할 때라고 본다.

 

5.18광주민주화운동 제39주년을 맞아 희생자를 추모하며, 부상자와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낸다.

 

기사입력 : 2019-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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